김대중 대통령 정부 업적과 비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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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생과 사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의 젊은 시절을 보니 언론인 이라기보다는 사업가였네요.

 

먼저 유년시절을 잠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나이 1924년생이니, 김영삼과 나이차이가 3살입니다. 김대중 님이 형이 되겠습니다. 고향은 전라남도 신안이 되겠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부인이 둘이었습니다. 둘째 부인의 아들이었습니다. 당시에도 일제강점기였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릴 적에 부모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부친께는 세상 살아가는 법과 정치감각을 배웠고, 모친께는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배웠다고 합니다. 학력은 목포 상고를 수석으로 했다고 합니다.

 

이희호 여사 결혼 사진

 

해방과 625 정국에서 초기에 공산주의에 심취했습니다. 혹자는 이 이력을 보고 빨갱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추후 그가 속한 단체의 비상식적인 사상으로 멀어지게 됩니다.

 

민족보다는 소련을 숭배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멀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전에 해운회사에 다닌 이력이 있었습니다. 좌익과 결별 후 그는 배 한 척으로 사업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사업가로서의 시작이었으며, 후에 언론사를 인수하게 되는데 이것때문에 기자로서의 이미지가 굳혀진 모양입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희호 여사는 첫 부인이 아닙니다. 차용애 여사 님이라고 있었는데, 일찍 사별하여서 재혼한 것입니다.

 

 

뜬금없지만 제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더 미남으로 평가를 내립니다. 아무튼 정치계에 발을 들였지만 낙선의 원조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특이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너지거나 쓰러지지 않는 그의 근성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장면 전 국무총리라는 사람이 그를 발탁하여 정치계 멘토가 되었습니다.

 

결국 목포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그때가 1963년도였습니다. 김영삼의 경쟁자이자 동지, 박정희에게는 걸림돌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평생 다리를 절고 다닌 이유가 생겼습니다. 바로 의문의 교통사고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보좌관이 사망했다고 하네요.

 

이희호 여사 학창시절

 

반 유신 투쟁을 하면서, 박정희와의 관계가 최악으로 갔습니다. 사찰은 기본이고 집에 가두기도 했습니다. 탄압의 시작이었습니다.

 

역시나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고난은 더욱 심했습니다. 신군부는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 음모로 긴급 체포를 했습니다. 심지어 사형 선고까지 받게 되었는데요. 이에 대한 고문 후유증도 심했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무려 4수 만에 대통령에 당선 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정부의 공과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인사 청문회 도입

 

당시 반대 세력인 한나라당의 요청에 의해서 만들어진 제도 입니다. 지금은 보편화되어 있는 인사 시스템이 되었는데, 부작용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질의하는 사람이 이름 한번 더 알리려고 의혹만 제기하고 책임은 없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요.

 

그래도 부적격한 사람을 걸러내는 단점 보다 좋은 제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 4대 보험 정립

 

현재는 당연시 되고 있는 4대 보험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세금만 내고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고,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가꾸어 나가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란 - 햇볕정책 :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긍정론, 비판론 다양하오니 이것은 이 글을 읽는 분들과 역사가 판단할 것입니다.

 

역시나 부정적인 평가와 비판에는 친인척 비리가 핵심에 있습니다.

 

1. 아들 김홍일, 김홍업, 김홍걸

 

세명 모두 권력형 비리에 연루되어 실형이 선고되었습니다. 권력의 핵심이 되면 친인척들 단속이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업무가 되겠네요. 또한 각종 게이트 사건이 어마하게 터졌습니다.

 

 

2. 지역 감정 극대

 

의도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전라도와 광주에서 몰표가 나오게 됩니다. 이를 두고 반대 세력에서는 저게 정상이냐 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어떤 세력이나 누군가 지역감정의 이유에 대한 것은 이견이 많습니다. 이 부분도 깊게 들어가 보면 나름 유익할 것 같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글도 무거워지고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까지 대한민국 역사의 굵직한 족적을 남긴 한 사람을 간단하게 알아봤습니다. 아마, 여건이 된다면 다른 주제로 앞으로 계속 다룰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는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정치인이나 누구나, 사람들에게 좋은 업적과 좋은 기억으로 남고자 하는 바람은 있을것 입니다. 희대의 기회주의자가 아닌 이상은 그 사람을 본받고 계승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는 영영 우리와 함께 살아 있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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