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어록 직업 고향 학력 전향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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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니 정치사 인물 대백과 사전이 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씩 쌓아 올릴 예정입니다. 다수의 네티즌들 사이에서 지만원은 극우로 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만원이 군대를 전역했던 1987년에는 그가 온건 보수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 변하게 되었는지 그의 프로필과 생애를 살펴보면서 알아보고자 해요.

 

 

1942년생으로 올해 나이 78살, 곧 팔순 잔치에 접어듭니다. 고향은 강원도 횡성입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시절에는 겁도 많았던 그 소년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해방을 지나 6.25를 겪으며 자랐습니다. 그래도 공부는 잘했다고 합니다.

 

 

 

육군 사관학교 기수 22기를 졸업하였습니다. 그 후 소위로 임관 되었지요. 안타깝지만 당시 진급의 핵심 무기였던 학연 지연이 그는 없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저 시대를 살았던 군인들의 베트남 파병 무용담은 많이 들었습니다. 베트콩을 잡았다느니, 로맨스가 있었다느니 이런 얘기들입니다.

 

당시 포대장이었던 지만원의 무용담은 이렇습니다. 누가 최초 발설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한국군의 대포에는 눈이 달렸다. " 적군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승승 장구했던 지만원 이었습니다. 백전백승 진짜 사나이 군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종 계급은 대령으로 전역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추정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아까 말했듯이 그는 능력은 있었지만 배경이 없었다고 합니다. 별을 달으려면 하나회를 비롯하여 권력의 핵심의 눈에 들어야 했기 때문이라는 썰입니다.

 

 

다른 하나는 군인 신분에서 군대 시스템을 비판했다가 내부 권력자들의 눈밖에 나서 강제 전역을 했다는 썰도 있습니다. 최종학력은 1970년대에 미국 유학을 갔습니다. 그는 미 해군 대학원 시스템 공학 박사입니다.

 

전역하고 군사 전문 평론가로 활동합니다. 당시에 민간 차원의 이런 직종의 사람들은 희귀했기 때문에 나름 인기도 있었고 파급력도 있었다고 합니다.

 

 

신선한 것은 김대중의 주위에서 도왔다는 것입니다. 김대중은 온건 보수 성향의 군인을 영입했는데 그중에 한 명이 지만원이었습니다. 당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공천을 못 받았는지 다시 그는 떠났습니다.

 

본인이 떠난 건지, 밀려난 것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이때부터 그의 정치적 행보의 전환점이 발생합니다.

 

극우로 전향한 이유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김대중의 햇빛 정책이 싫었다. "

 

당내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서 이렇게 앙숙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과거 새누리당, 현재 미래통합당의 일부 의원들에게 지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정치란 어떻게 보면 자기 주관이 확고하면 어느 정도 메리트가 있는 모양입니다.

 

관련 단체들에게 고소를 많이 받기도 했지요. 그래도 그는 꿋꿋합니다. 이제 곧 사망할 나이가 다가 오지만 그의 행보는 잊을만하면 보도가 될 것입니다. 그를 알아보려고 시스템 클럽에 잠시 들어가서 유년시절의 글을 읽어봤습니다. 사회적으로 비치는 그런 투사가 아닌, 서정적인 글이라 조금 놀랐습니다. 의외로 감수성이 있는 모습에 신선했습니다.

 

 

최근 근황은 북한에 삐라 살포에 대한 후원 70만원을 했다고 합니다. 현재 직업은 군사평론가라고 봐야겠네요.

 

참고로 지만원은 결혼을 했고 이혼을 했고 재혼을 했습니다. 슬하에 자녀는 딸 4명에, 아들 1명 되겠습니다.

 

가족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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