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의사? 가족 부인 아들 딸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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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의 고향은 경상북도 구미입니다. 1950년 이전에 아버지는 정미소를 했기 때문에 집안은 대체로 부유했다고 평가받고 있지요. 선생님 생활을 잠시 하다가 군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때 박정희를 만나게 됩니다. 같은 고향이고 잠시 교편을 잡은 이력도 있어서 친분이 이때부터 있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관계가 좋더라도 능력이 없다면 같이 있기 힘들 수 있습니다.

 

 

권력이 생긴 이후로 여러 중역을 맡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최측근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박정희는 절대 2인자를 두지 않는 특성이 있었습니다.

 

 

 

비료 관련 사업을 시키기도 했는데 능력과 수완이 좋아 잘 해냈습니다. 추후 건설장관도 역임했는데 평가가 좋습니다. 프로필 사진을 보면 경력이 다채롭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박정희의 2인자두지 않는 정책은 곧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요. 그래서 차지철과 권력 경쟁을 하게 방치합니다. 이것은 충성 경쟁이라고도 하지요.

 

실제 그의 여동생과 가족들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 차지철과의 충성 경쟁, 두뇌 다툼이 치열하고 고달프다. " 당시에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암살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합니다. 그 부분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차지철과의 과도한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

 

상식에 벗어나는 행위와 술수로 회의감이 들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권력자는 거기에 휘둘렸기 때문에 상관에 대한 실망이 한 요인이 되기도 했겠지요.

 

 

둘째, 부마 항쟁 진압에 대한 동의할 수 없는 명령

 

발포 명령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시위를 하는데 강압 진압에 대한 반발과 회의감이 있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상도에서 민간인 희생이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있었는데, 독재의 길로 간다는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릅니다. 이 부분에 어떻게 보면 내란이었는지 의사였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될지도 모릅니다.

 

 

셋째, 박근혜 최태민 관계에 대한 보고서 묵살

 

김재규는 이 둘의 관계에 대해 불신하였고, 심지어 최태민을 평가했을 때 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직접 이 둘을 조사하였고 나름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보고서를 올렸는데, 상관은 별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다는 겁니다.

 

아마도, 순박한 딸이 그래도 같이 어울리고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 대한 위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넷째, 악감정과 권력욕이 있다는 견해

 

만약 암살을 하지 않고 야인으로 돌아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의 행적과 정치 활동과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무덤까지 가져가겠다 각서나 맹세를 하고 떠났으면 남은 여생 편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건을 예로 들어 입을 닫고 있으면 가능했을 겁니다. 그러나 잠수를 탄 것이 아니라 그는 암살을 했습니다.

 

그 직후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살펴보면 권력욕이 있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사형을 예상하고 계획한 것이라면 진심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암살을 한 것이겠지요.

 

 

그 이후 권력 승계의 자리를 확보한 것은 전두환이었습니다. 신군부 세력이라 하며, 사형 후 재산을 몰수당하고 가족들은 억압받고 핍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김재규의 부하들도 지금에서야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을 때 이렇게 낙서를 했다고 합니다.

 

"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 "

 

 

한편 김재규의 부인은 사건 직후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암살자의 불명예 딱지를 붙였고 재산도 없고 여러모로 힘들어서 자살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외동 딸도 버티지 못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김재규와 내연녀 사이에 있던 아들도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후에 어느 병원에서 사망한 것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그의 후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며 역사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정치란 무섭습니다. 권력 다툼에서 밀리거나 잘못되면 자녀들과 자손들은 무한 고통을 받습니다.

 

여동생과 매제와 일부 단체들이 명예를 회복하려는 운동을 하고 있으나,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의 행위는 반역이었을까요, 열사였을까요.

 

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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